연구원인 **씨는 요즘 들어 더 외롭고 피곤한 상태입니다. 자신이 맡은 업무는 매우 유능하게 처리하였지만, 대인관계에서는 지나치게 예민하고 까다로운 편이어서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거의 없고, 직장 동료들과도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직장 동료들이 커피 한잔을 사주면서 다정하게 말을 걸어도, 그 속에 자신을 이용하거나 속일 것 같은 의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대화를 이어나가기가 꺼려집니다. 회의를 하는 동안에도 자신의 의견에 누군가 반대를 하면, 일부러 자신에게 모욕을 주거나 비난하려 한 것이라 생각되어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화가 나고 원망이 올라옵니다.
이런 분노와 원한은 쉬이 사라지지 않아, 몇 달 뒤에 자신에게 반대한 상사를 보아도 마음이 풀리지 않고 경계하게 됩니다. 이처럼 **씨 스스로 불신의 벽을 쌓다보니, 함께 식사할 사람조차 곁에 남아있지 않아 결국 외톨이로 남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택시운전사, 식당종업원, 택배배달 직원 할 것 없이,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을 부당하게 대우하지 않을까 늘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어 항상 긴장되고 피곤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가족관계, 친구관계, 이성관계, 직장에서의 인간관계 등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됩니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행복의 원천일 수도 있고, 때로는 불행의 가장 큰 원천이 될 수도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관계를 잘 맺기 위해서는 자신의 성격을 잘 이해하고 타인의 성격을 잘 파악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성격이란 어떤 사건에 직면해서 독특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그 사람의 고유한 패턴으로서, 시간의 흐름이나 상황에 변화에도 큰 변화가 없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특성입니다. 따라서 한 사람의 성격을 잘 이해하게 되면, 그 사람의 생각이나 정서, 행동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격적 특성으로 인해 대인관계와 직업 영역에서 심각한 부적응을 경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성격 장애’라고 하는데, 어린 시절부터 서서히 발전하여 성인기에 개인의 성격으로 굳어진 심리적 특성이 부적응적 양상을 나타내는 경우를 말합니다.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경험할 때 부적응적인 반응을 반복하고, 대인관계나 직업적인 측면에서 어려움을 나타내며, 정신건강 수준이 매우 낮아져 있고,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여 대인관계에서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신장애의 분류체계인 DSM-5에서는 성격장애를 크게 3가지 범주로 구분하고 있으며, 이는 다시 10가지 하위유형을 분류됩니다.
하지만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반드시 성격장애 때문이 아닐 수 있습니다. 즉 정상인의 경우에도 기능상의 심각한 문제가 없을지라도 위에 언급된 성격적인 특성을 일부 보일 수 있습니다.
성격장애는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와 같은 심리 장애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즉 심리 장애는 큰 어려움 없이 잘 생활하던 사람이 부정적인 생활사건을 경험하면서 증상을 나타나는 경우라면, 성격 장애는 개인의 성격 문제로 인해서 부적응적인 삶의 형태가 지속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심리 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주관적인 고통감이 크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상담에 오는 경우가 많은 반면, 성격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잘 자각하지 못하고 상황이나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격 장애는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내면에 안정된 형태로 자리 잡은 구조적 특성이기 때문에 쉽게 변화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격 장애의 치료는 오랜 기간의 상담이 필요할 수 있지만, 치료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먼저 인지행동치료에서는 성격 장애를 역기능적 패턴이 상황에 맞지 않는 부적응적인 방향으로 경직되고, 융통성 없게,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따라서 각 성격장애에서 전형적으로 관찰되는 핵심믿음에 대한 보상전략으로서의 역기능적 행동패턴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앞서 제시된 사례인 편집성 성격장애의 경우, ‘세상은 믿을 수 없다’라는 핵심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 ‘만일 누군가를 믿으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중간믿음)’, ‘아무도 믿지 말고 경계하라(보상전략)’와 같은 방식으로 대처하면서 사람들을 대할 때 불신하고 의심하며 경계하는 행동패턴을 보이게 됩니다. 따라서 성격 장애의 치료에서는 비정상적으로 과잉발달된 패턴을 대신하여, 결핍된 패턴을 강화함으로써 보다 적응적이고 기능적인 행동을 하도록 이끌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편집성 성격장애의 경우, 의심하고 경계하는 패턴(과잉발달된 패턴)을 대신하여, 다른 사람을 신뢰하고 수용하며 평온함을 회복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과정에는 다양한 인지적, 행동적 개입이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만성적인 성격장애의 치료에는 전통적인 인지행동치료를 확장한 통합적인 심리도식치료가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심리도식치료에서는 만성적인 성격장애자들이 아동기 시절에 충족되지 못한 핵심적 정서욕구(예: 타인과의 안정애착, 자율성 및 정체감, 욕구와 감정을 표현하는 자유, 자발성과 유희, 현실적 한계 및 자기통제)로 인해 부적응적인 심리도식(예: “나는 결함이 많고 열등한 사람” “다른 사람들은 나를 속이고 이용할 것이다”,“실수를 하면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이 발생한다고 가정합니다.
부적응적인 심리도식이 활성화될 경우 극심한 정서적 고통을 경험하게 되므로, 성격장애 환자들은 핵심도식을 회피하거나 보상하기 위해 대처도식과 대처방략에 과잉의존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결함도식이 있는 사람은 완벽하게 보이려 애쓰는 과잉보상 행동을 보이거나 자신의 결함이 노출되는 것을 염려하여 타인과 가까워지지 않으려는 회피행동을 보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심리도식치료에서는 이러한 부적응적 심리도식을 치유하기 위해, 도식과 연결된 기억의 강도, 정서가 및 신체감각의 크기, 그리고 부적응적인 인지도식, 부적응적인 대처행동을 치료하기 위해 체험적, 인지적, 행동적 방략 등을 시도합니다.